두 번째 백반기행.
이번엔 서산이다.
일주일 전 강진 촬영 때 더워서 고생했던 기억에 가볍게 입고 나섰다.
삼길포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들 한겨울 파카를 입고 있는 게 아닌가.
‘4월 말에 웬 겨울파카?’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.
그런데 잠시 후, 그 이유를 알았다. 너무 추웠다.
옷가게도 없고,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긴 양말을 사 신었다. 종일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.
간월도 방조제 낚시터.
오래간만에 낚싯대를 잡았다가 허탕만 쳤다.
밥이나 먹자 싶어, 낚시꾼들을 따라 동네 사람만 안다는 후미진 식당에 갔다.
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.
잠시 후 밥상이 나오고 반찬을 하나씩 먹어보는데 이런!
미나리무침, 시래기들깨볶음, 무젓, 무수짠지, 멸치꽈리고추조림 등
재료 하나하나 그 맛이 다 살아 있다.
서산의 잔치음식이었다는 등뼈 김칫국과 들깨된장도 자극적이지 않았다.
주인장에게 물어보니, 가급적이면 조미료를 쓰지 않고
직접 담근 된장, 간장, 새우젓으로만 간을 한다고 한다.
‘아...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이다.’
특히 인상적이었던 반찬은 꽈리고추를 멸치와 함께 졸여서 낸 건데,
간장에서 깊은 맛이 났다. 알고 보니, 30년 된 씨간장 맛이었다.
자그마한 동네 백반집에서 30년된 ‘씨간장’으로 맛을 낸다니...
여름에는 어떤 반찬과 국이 나올지, 가을엔 또 어떨지
계절마다 찾아와 먹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.
재야에는 고수가 너무 많다.
그리고 또 하나, 택시 기사님들과 낚시꾼들이 추천하는 식당은 성공확률 99.9%다.
참, 이 집은 젊은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.
‘평양냉면 같은 맛’이다.
처음에는 이게 무슨 맛인가 싶지만, 한 번 그 맛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.
이 집 맛이 그렇다. 심심하다. 그런데 계속 생각난다.
시장을 가보면, 장사하는 아주머니들 네다섯 분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.
볼 때마다 매번 느꼈던 것이, 정말 맛있어 보인다는 거다.
“밥 좀 주세요.”란 말은 차마 못 하고 군침만 흘렸었는데
서산 삼길포에서 소원 성취했다.
촬영의 힘을 빌어 시장 상인들한테 끼워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OK~
해풍에 말려서 꼬수웠던 우럭 살, 담백한 국물이 인상적이었던 우럭젓국.
실치액젓으로 담근 김장김치에 통통하게 살 오른 우럭을 넣어 만든 우럭김치찜.
말려서 쫀득쫀득한 간재미를 무친 간재미무침까지.
오랜 세월, 그들이 먹어온 방식대로, 가장 맛있는 방법으로 요리한
토박이들의 밥상은 정말 맛있었다.
그런데 똑같은 음식을 집에서 그 맛이 안 날 것 같다.
시장 상인들과 어깨를 맞대고 먹어서 더 맛있었던 게 아닐까?
사실 서산은 수족 같은 동생들이 있어 특별한 곳이다.
녀석들, 서산 제철 음식 제대로 하는 집이 있다고 가자더니
시장에서 주꾸미, 장어, 호래기... 해산물을 잔뜩 샀다.
장본 걸 들고 갔더니 서산 토박이 주인장과 상의를 한다.
알고 보니, 제철 해산물을 사가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
메뉴를 추천해주고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곳이었다.
‘이게 바로 맞춤 서비스구나!’
호래기는 날 것으로, 주꾸미는 살짝 데쳐서 숙회로, 바지락은 새콤하게 초무침으로...
어느 하나 맛 없었던 게 없었다.
특히 바지락은 어찌나 잘 데쳤는지 데치는 법도 물어 한 수 배웠다.
자세한 팁은 방송에서 확인하시길....
언제나 반갑게 맞아주고 편안하게 대해주는 서산 동생들과 함께 한 밤.
얘들아, 고맙다!
❝서산에 가면 항상 즐겁다.
맛있는 음식과 함께 동생들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.
산에서 만났다.
내 장례식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.❞
서산에 와서 안 먹고 가면 섭섭하다는 ‘박속낙지탕’을 먹으러 갔다.
질끈 묶은 두건에서부터 고수의 포스가 느껴지는 주인장.
‘제대로 찾아왔구나.’
자리에 앉자마자 기본 찬부터 나왔다.
웅도식 어리굴젓, 머위쌈과 굴강된장, 파래무침 등등 소박하다.
그런데 내 뒤통수를 후려친 반찬이 있었다.
바로 굴강된장이다.
굴을 넣어 만든 강된장, 사실 비쥬얼이 그다지 예쁘진 않다.
아무 생각 없이 머위쌈에 밥 올리고, 굴강된장 한 알 올려 먹었는데
정말 최고였다!
역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.
이윽고 나온 박속낙지탕.
오랜 식객 인생에 박속낙지탕은 또 처음이다. 아직도 못 먹어본 음식이 참 많구나.
넉넉하게 넣은 박과 신선한 낙지. 이 둘의 조합도 놀라웠다.
‘진정한 시원함이란 이런 맛이구나... ’
해장으로 정말 딱이다.
❝속이 답답하고 응어리 진 날,
특히 비가 오는 날 적극 권하고 싶다.
또 생각난다
‘박속낙지탕’이 먹고 싶어 서산에 가고 싶다.❞
길을 걷다 우연히 들르게 된 어느 마을.
버스 정류소에 위치한 오래된 어느 상회를 지나다
왁자지껄 웃음소리에 발걸음이 저절로 향했다.
빼꼼 고개를 내밀어 안을 살피니 수상한 ‘꽃놀이’가 한창이었다.
동네 형님들께서 하도 재미지게 놀고 계시기에 슬쩍 동석했다.
소주 한 병에 2,000원만 내면 안주가 무료.
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니 놀랍다.
서산 토박이 주인장이 끓인 게국지에 따뜻한 밥 한 술.
음식 맛과 따뜻한 정이 섞여 그 맛이 기가 막힌다.
70여 년을 한 동네에서 살아온 미소천사 김여사님과
70여 년을 한 동네에서 얼굴 보고 살아온 형님들...
그야말로 한 지붕 한 식구다.
❝동네 사랑방이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던 곳이었다.❞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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