명륜동 6

[종로구 혜화] 서울 역사 탐방 - 양현교 터

이 곳은 양현고 터로 표지석에 나와있듯이 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 ․ 물품 공급을 담당하고 석전제(釋奠祭)의 비용을 조달하던 기관의 터로세조 때 철폐되어 풍저창(豊儲倉)에 귀속되었으나 1483년(성종 14) 유생들의 상소로 다시 양현고로 환원되어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고합니다. 양현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어 내용을 보니  1392년(태조 1) 조선의 새 관제(官制)를 정할 때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설치하였고세조 때 폐지되어 풍저창(豊儲倉)에 속하였다가 1483년(성종 14) 유생들의 상소로 복구되었으며,1894년(고종 31) 갑오개혁 때 폐지하였다고합니다.양현고의 관원으로는 종6품의 주부(主簿) 1명, 종7품의 직장(直長) 1명, 종8품의 봉사(奉事) 1명을 두었으며성균관 관원인 전적..

여행/서울 2024.06.24

[종로 혜화] 서울 역사 탐방 - 문화유적 '숭보사'

주소 :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7길 1 숭보사는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1977년 3월 17일에 민속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고합니다. 숭보사는 성균관 문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 원래는 문묘의 부속 건물로 앞쪽의 살림채와 뒤쪽의 사당으로 구성되어있다고하네요.살림채는 약간 동쪽으로 튼 남향을 하였고 그 뒤에 바짝 붙어 있는 사당은 약간 더 동쪽으로 튼 남향을하여전체적으로 두 건물이 비스듬하게 배치되어 있다고합니다. 이 곳은 문성공 안향 선생이 집안의 노비를 면천시켜주자 이에 면천된 성균관 노복들이 안향선생의 은덕을 보은하기 위하여안향 선생이 돌어가신 후 기일 성균관 동묘에서 1744년(영조 20)까지 제사하여 오다가 후에 단을 따로 설치하였다가 다시 사우를 건립하였다고하네요. 이런 곳을..

여행/서울 2024.06.21

[종로구 혜화]역사 탐방- 명륜동에 위치한 '어유구 집터'

주소 :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258   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어유구(1675 ~ 1740)는한성부윤을 지낸 어윤형의 아들로 딸이 선의왕후로 경종의 부인으로 경종의 장인이라합니다. 어유구는 문인이며 노론이나 경종은 소론을 지지했다고하는데딸경종의 비가 된 후 소론으로 조금 바뀌게 되었다고합니다. 어유구 집터에는 대갓집이다 보니 집 안에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해서 궁정내동이라고 궁안에 큰 우물이 있던 동네라고 이야기 했다고하네요. 안보이는 곳이아닌 큰 길에 있어 보이기는 하나 무심코 지나가다보면 모를 수 있을거 같아요

여행/서울 2024.06.14

[종로구 혜화] 명륜동 사저-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던 곳

주소 : 서울 종로구 혜화로9길 24한무숙 문학관 근처에 있는 빌라로 오다가다아담한 빌라네 하고 지나쳤는데  이 곳이 알고보니 노무현 전 대통이 사시던 곳으로 1997년 당의 요청으로 부산 지역구를 포기하고 종로구 지역구 출마를 위해 서울 여의도 아파트에서 종로구 명륜동 빌라로 이사하셨다고합니다. 이 후 2002년 새천년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셨다는데 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시던 곳인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.

여행/서울 2024.06.13

[종로구 혜화] 역사 탐방-3.1운동 100년 역사 - 3.1 독립운동기념터:중앙학림

주소 :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17길 22 우암 송시열의 집터와 흥덕사터 사이에 있는 중앙학림 독립운동기념터 사이에 있는데그 곳을 지나쳐가며 모를 정도인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표시라도 해놨으면 많은 분들이 이 장소에서 어떠한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곳인거같네요... 우암 송시열 집터와 흥덕사 터를 찾아가지 않는다면 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보니 이런 곳이 있는 줄 모를거같더라구요 표석에 나와있는대로  이 곳은 1919년 3.1운동 거사를 위해 한용운 선생이 중앙학림 학생들과전국 불교인들의 시위 계획을 논의하던 곳이라고 합니다.

여행/서울 2024.06.11

[종로구 혜화동] 역사 탐방-유형문화재 '우암 송시열 집터'

주소 :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17길 37 조선 후기 관료이자 학자인 송시열이 살았던 집터로 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해 있어요~ 1984년 7월 5일 서울 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을 받았다고하는데(이런 곳이 있었는줄 몰랐는데 최근에서야 알게되었어요.) 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로 호는 우암으로 송시열이 한성에서 벼슬 생활을 할 때 머물던 곳이라고합니다. 일생을 주로 충청도에서 보냈기에 한성에서 머문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고조선시대 사람들은 송시열의 집이 있던 일대를 송시열의 성을 따서 宋洞으로도 불렀으며 봄에는 꽃이 많이 펴 꽃구경하는 명소로도 여겼다고하네요. 현재는 그가 살았던 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가 증주벽립이란 글씨를 새긴 바위와송시열 집터임을 알리는 비석 우암구기가 남았다고하는데마..

여행/서울 2024.05.3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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